[FT스포츠] 중국축구협회(CFA)로부터 영구 제명 징계를 받은 손준호(수원FC)가 직접 공식 석상에 나서 중국 공안의 협박 만행을 폭로했다.
2024년 9월 11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수원시체육회관에서는 중국축구협회의 영구 제명 관련 기자회견이 열렸다. 앞선 10일 중국축구협회는 공식 성명문을 통해 “손준호는 산둥 타이산 소속 당시 승부조작으로 불법 이익을 얻었으므로 중국 축구 내 관련 활동을 평생 금지한다”라고 발표했다. 중국은 지난 2022년부터 승부조작과 온라인 도박, 뇌물 수수 등 관련 용의자 128명을 체포했으며 사건에 연루된 61인 명단에는 손준호가 포함됐다.
1992년생으로 올해 나이 만 32세인 손준호는 지난해 5월 상하이 훙차오공항에서 비국가공작인원 수뢰혐의로 연행됐다. 이후 중국 공안에 구금된 손준호는 약 10개월 뒤 어렵게 석방돼 귀국했다. 약 1년간 공식 경기에 나서지 못한 손준호는 지난 6월 K리그1 수원FC와 계약해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기자회견에서 손준호는 “조사 과정에서 중국 공안의 강요와 협박이 있었고, 가족 관련 협박에 못 이겨 거짓 자백을 했다”라고 털어놨다. 이날 국내 복귀 3개월 만에 직접 공식 입장문을 읽은 손준호는 이 과정에서 감정에 북받쳐 수차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손준호는 먼저 “많이 찾아와주셔서 감사하다”라며 기자회견에 참석한 취재진들에 감사를 표했다. 손준호는 “막상 오니까 긴장이 된다”라면서도 “제 입에서 나오는 말은 사실이다. 진실만을 얘기하겠다”라고 약속했다. 이어 손준호는 “응어리를 털 시간이 와서 홀가분하다. 긴 얘기가 될 것이다. 처음부터 말씀드리겠다.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점은 양해 부탁드린다”라고 운을 뗐다.
손준호는 “중국 공안에 체포될 당시 당황스러웠다”라며 연행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손준호는 “가족들 앞에서 체포되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라고 토로했다.
더 당황스러운 건 체포 이후였다. 손준호는 “공안이 본인 핸드폰으로 번역해 뇌물 수수혐의죄로 체포한다는 문구를 보여줬다. 무슨 말인지 싶었다. 어이가 없고 당황스러웠다”라고 말했다. 손준호는 중국 공안에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체포된 지 몇 시간이 지난 뒤에야 한국말이 어눌한 통역이 도착했다. 손준호는 “죄를 지어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을 때 당황스러웠다. 결백하다고 했다. TV나 드라마를 통해 이런 상황을 봐 변호사를 선임하겠다고 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경찰 통역은 큰일이 아니라 했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이유”라고 부연했다.
영문도 모른 채 구치소로 끌려갔다는 손준호는 “조사가 시작됐는데 갑자기 중국 공안이 말도 안 되는 혐의를 제시했다. 혐의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너의 아내가 외교부를 통해 체포돼 초양 구치소로 같이 잡혀 와야 한다고 겁을 줬다”라며 협박을 받은 사실을 폭로했다. 손준호에 따르면 공안은 핸드폰에 있는 손준호의 아들과 딸 사진을 보여주며 “엄마가 없으면 아이들은 어떡하겠나. 아이들도 아빠가 보고 싶지 않겠나. 그러니 빨리 인정을 하라”라고 자백을 강요했다.
공항에서 체포된 뒤 가족들의 안위가 걱정됐다는 손준호는 “가족들이 한국에 갔는지, 중국에 남았는지도 전혀 알 수 없었다. 더욱 겁이 났고 가족 생각이 많이 났다”라고 토로했다. 손준호는 “그때 공안이 제안을 했다. 지금이라도 혐의를 인정하면, 빠르면 10일에서 15일 뒤에 나갈 수 있다고 했다. 보석도 가능하다고 회유했다”라고 말했다. 손준호는 “몇 번이고 되물었다. 너무 겁이 났다”라며 “살면서 이런 적도 처음이었다. 무엇인지도 모르는 혐의에도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털어놨다.
그로부터 3주 후 가족들이 한국에서 신청한 변호사와 첫 접견을 가졌다는 손준호는 “내가 혐의를 인정했기 때문에 변호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라고 전했다.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해야 도와줄 수 있다는 말에 손준호는 자신이 앞서 겪었던 모든 일을 설명했다. 그러자 변호사는 “잘못도 없는 데 왜 혐의를 인정했나”라며 진실을 번복할 것을 권유했다. 손준호는 “그 말을 듣고 제가 너무 바보 같고 한심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가족 걱정,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너무 안일한 판단을 했다”라고 자책했다.
손준호의 가족들 역시 중국 변호사에게 “한국에서 기자회견 등을 통해 호소하면 어떻겠냐”라고 제안했다. 그러자 “그러면 우리는 손준호의 변호 활동을 할 수 없다”라고 선을 그은 중국 변호사는 “남편이 재판에 서야 한다. 외부에 얘기하면 안 된다”라고 발언했다. 손준호는 “정부나 대한축구협회에 도움을 청하지 않은 이유”라며 “개인적으로 해결하고 있었다”라고 첨언했다.
하지만 손준호가 진술을 번복하자 중국은 강도 높은 조사를 다시 진행했다. 손준호는 “무혐의 주장을 하자 터무니없는 증거를 가져와 압박하더라”라고 회상했다. 손준호는 “중국 공안의 주장을 반박했다. 수개월 동안 단 몇 번의 조사밖에 받지 않았다. 수사 과정 영상과 음성 파일을 변호사에게 보여달라고 신청했지만, 공안은 음성 파일이 없다는 답을 했다”라면서 “중국이 당당하다면 음성 파일을 공개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저를 어떻게 조사했고, 자백을 받아냈는지 보여줬으면 좋겠다”라고 꼬집었다.
손준호는 “초기부터 압박 조사를 해 거짓 자백을 받아냈다. 이후 조사도 무의미한 내용의 반복이었다”라며 진실을 떳떳하게 밝히고 싶다고 강조했다. 계절이 두 번 바뀌면서 여러 차례 조사를 받았다는 손준호는 “수사 후 공안이 ‘집에 빨리 돌아가고 싶지 않냐’고 물었다”라고 전했다.
재판이 있기 전에는 판사가 따로 손준호를 부르기도 했다. 손준호는 “중국 고위 간부로 보이는 사람과 판사가 대화하더라”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이들은 손준호에게 “너는 절대 무혐의로 나갈 수 없다”, “뭐라도 인정하지 않으면 외교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작은 죄라도 인정해야 한다”, “인정하지 않으면 언제 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라는 취지의 압박을 가했다.
이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겨 구치소 방으로 다시 올라갔다는 손준호는 “변호사를 통해 아내의 의견을 묻고 변호사의 의견도 들었다. 며칠 후 그 판사, 고위 간부와 대화를 했다”라고 말했다. 손준호와의 대화에서 판사는 20만 위안(약 3,764만 원)을 받았다고 인정하면 수일 내로 석방하겠다고 조건을 제시했다. 판사는 또 한국에서 축구 선수로 다시 뛸 수 있게끔 해주겠다는 거래도 함께 제안했다.
축구선수로서 승부조작 교육을 많이 받았고, 치명적이라는 걸 알았다는 손준호는 “판사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라고 고백했다. 손준호는 “한 경기 승리 시 실제 보너스가 16만 위안(약 3,011만 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20만 위안을 받았다고 하면 승부조작이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라고 덧붙였다.
결국 손준호는 10개월 넘게 좁은 방에서 20명도 넘는 사람과 함께 생활해야 했다. 손준호는 “고된 환경에서 홀로 한국인으로서 하루에 말 한마디도 못 하고 철조망 같은 창문을 바라봤다. 하루하루 정말 힘들게 살았고, 심신이 모두 지쳤다”라고 말했다. 하루라도 빨리 탈출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는 손준호는 “대한민국 땅을 밟고 싶었다. 판사와 그 고위간부는 ‘이 일을 절대 발설해서는 안 된다. 큰 문제를 삼아 축구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라며 그들의 말을 되새겼다.
올해 3월 어렵게 풀려나 한국으로 돌아온 손준호는 대한축구협회(KFA)를 통해 국제이적동의서(ITC)를 신청했다. 손준호는 “예상외로 빠르게 발급이 됐다.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게 되어 기뻤다”라고 말했다. 손준호는 “지금껏 대응하지 않았고, 못했던 얘기들”이라며 “이제라도 얘기해 마음이 홀가분하다”라고 덧붙였다. 손준호는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라면서 “절대 응원을 해준 국민 여러분들께 사실만을 이야기한다. 국민 여러분들뿐만 아니라 축구계에서도 날 믿고 도움을 주시길 부탁드린다”라고 호소했다.